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괌의 역사

괌은 마리아나 제도의최남단에 있는 가장 큰 섬으로, 약4,000년 전 항해사들에의해 태평양에서 가장 먼저 형성된 최초의 정착지 중 하나이다. 여러 세대에걸쳐 발전한 문화와 언어는 차모로(CHamoru)라고 알려져 있는데, 오늘날 전 세계 약 3분의2를 차지하는 고대 황하와 양쯔 분지에서 유래한 약 1,200개의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중 하나이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서기 800년까지 차모로족이공동 주택을 짓기 위해 정교한 돌기둥(라테)을 세워 복잡한 사회로 발전시켰다고한다.

1521년 괌에 도착한 최초의 유럽인은 포르투갈 탐험가 페르디난트 마젤란(1480-1521)이었다. 그의 여정을 시작으로 괌이 17세기 스페인의 식민지가 될 때까지 많은 외국 탐험가들의 도전이 이어졌다. 해외에서 유입된 질병과 28년에 걸친 차모로-스페인 전쟁으로 인해 인구는 이전의 10분의 1로 감소했다. 19세기에 미국이 스페인-미국 전쟁 직후 통치권을 갖게 되면서 괌은 미 해군의 권한 하에 놓이게 되었다. 1941년 12월 8일부터 1944년 7월 21일에 걸친 제2차 세계 대전 동안에는, 일본이 괌을 공격하고 점령하여 미국이 섬을 다시 탈환할 때까지 많은 무고한 민간인이 목숨을 잃은 잔인한 전투가 계속되었다. 미 해군의 통치하에 행해진 미국의 토지 수용 정책으로 인해 많은 차모로인들이 그들의 땅을 잃었고, 1950년이 돼서야 미국은 괌이 미국에 합병되지 않은 자치적인 영토임을 확인하는 조례를 발표하면서 차모로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했다.

오늘날 괌은 이 지역의 경제 및 상업 개발을 위한 허브가 된 미국의 조직적인 자치령으로, 다양하고 다문화적인 인구를 받아들이면서차모로 사람들의 자랑스럽고 탄력적인 정신, 언어 및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라테

라테는 마리아나 제도 전역에서 발견되는 살아있는 차모로문화의 중요한 정신적 상징이다. 각각의 라테는 할라기(haligi)라고 불리는기둥과 그 위를 덮고 있는 타사(tasa)라는 두 개의 돌로 구성되어 있다. 석회암, 현무암 또는 암초 산호로 만들어진 라테는 주택 및 그 외 주거지의 기초가 되는 구조물로6개에서 14개까지 평행하게 배열되어 있다. 해충의 피해를 막고 건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높은 구조물의 아래에는 파파삿게(papa’såtge)라는 작업장이있다. 라테는 이 지역의 독창적인 것으로 지진과 태풍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것으로보인다. 마야의 피라미드만큼이나 오래된 라테는 차모로의 건축성 독창성을 잘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날으는 프로아

차모로의 항해용 카누인 프로아는 차모로어로 사크만(sakman)이라고 불린다. 초기 유럽에서 온 탐험가들은 이 항해용 카누의 빠르고 날렵함에 매료되었고,한 항해사는 이 카누가 마치 하늘을 나는 것 같다고 기술하기도 했다.

차모로의 항해사들은 천체의 움직임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가이드로 사용하고 바다와 바람의 패턴을 읽음으로써 열린 바다를 항해했다. 갈레이드(galaide)는 17세기에 암초의 안팎에서 낚시를 하기 위해 사용된 사크만의 일종이었다. 이 선박의 건설은 식민지 지배하에 중단되었지만,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사크만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빠른 속도의 해양 스포츠용 선박을 설계하는데 영감을 주었다.